소설
죽음의 신은 언제나 유혹한다.(3)
사막의 지배자
2010. 9. 14. 01:07
그의 말을 듣는 동안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12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공익요원이 서 있었다. 짜증섞인 표정과 손짓으로 이미 차가 끊겼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개찰구 쪽으로 걸었다. 그가 뒤에서 이야기 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군요. 다시 봅시다."
그는 사라졌다. 개찰구 밖으로 나와 집으로가는 택시를 잡았다. 역 앞에는 길게 택시가 늘어서 있었다.
"대방동으로 갑시다."
짧은 대화, 그리고 차분한 라디오의 음악. 나는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곧 다시 볼 그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를 따라가면 될까? 사실 죽음이란게 누구에게나 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냥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이 그를 따라가는 방법.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겠지만 이 방법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삶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왜 나는 그에게 화를 내고 따지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는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듯 나의 죽음을 강요했다. 신이라는 압도적인 대상만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그렇게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꺼다.
"도착했습니다. 팔천원입니다."
차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걸었다. 그는 광장 쪽 벥치에 앉아있었다.
"이제 오셨군요. 그래 생각은 좀 하셨습니까? 제 말에 대한 반박거리가 있던가요?"
"네, 당신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요. 하지만 전 생각하는 도중, 당신이 신이라는 권력으로 저를 유혹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인 저로써는 신인 당신의 말에 현혹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오시는 동안 많은 생각이 있으셨군요. 그럼 계속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래요. 당신 말대로 당신을 죽음으로 이끌 이유가 너무 부족하더군요. 사실 당신이란 사람은 존재가 신기할 정도로 투명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좀 고민을 했지요. 그런 당신이 왜 죽어야 하는가. 왜 더이상 살아서는 안되는가. 첫 단서로 당신의 삶이 너무 무가치 하다는 걸 들 수 있군요. 사실 당신이 가족이라 부르는 그 사람. 가끔은 그 사람마저 당신의 존재를 잊고 있던데요. 나름 사랑하는 사이로 공식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존재마저 당신을 망각한다면 그게 바로 당신이 이곳을 떠나야 할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녀. 나와 10년을 살고 있는 그녀. 가끔 내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 다른 이를 집으로 초대하곤 했다. 하지만 난 놀라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사실 그녀와 살고 있지만 이제 더이상 몸도 부비지 않는 사이니까. 그녀에겐 다른 남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그녀, 우리의 첫 만남 때에도 그녀는 단지 자신의 욕구 때문에 나를 안았다. 그런 사이었다. 가족처럼 굳어버린 나의 사랑. 슬쩍 그녀의 곁을 떠난다고 해도 처음부터 그랬었듯, 그녀는 잘 지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에겐 가족이란 의미 없는 집단인 것이다. 그가 말을 잇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