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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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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5 하루 일과 중 가장 지루하고 싫은 일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식사라고 생각한다. 하루의 긴 시작도 하루 일과의 마지막도 바로 식사가 함께한다. 그래서 나는 식사에 대한 고민이 많다. 아마도 혼자 사는 사람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이리라. 정해진 시간과 그 시간은 내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고민은 안정된 삶에 가장 큰 독이다. 난 매번 식사시간이 오는 것을 걱정한다. 도서관은 다행히 구내식당이 있고, 나는 A 또는 B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점심은 나에게 가장 편한 식사이다. 아침은 언제나 굶는다. 일어나는 시간이 늦기도 하지만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사러 가고 고민하는 것이 싫어서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이는 두 가지 장점을 가진 일이다. 첫째, 고민할 필요가 없어 편안한 아침을 ..
step 4 10분 거리. 꼭 10분이면 된다. 우리 동 남쪽에 있는 산을 살짝 걸친 도서관. 근처에 집들은 모두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다. 가장 가까운 곳을 얻으려 했지만 결국 도서관 아래로 난 길 세 번째 집 2층을 얻었다. 적당한 가격, 적당한 거리. 충분히 만족할 만 한 곳이었다. 처음 사서 일을 시작할 때 나는 약간은 흥분되는 그 순간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가도록 나는 그 거리 그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발전하는 삶, 도전하는 삶, 위를 향하는 삶을 포기한 대신 내가 얻게 된 건 안정된 삶이었다. 하루를 통틀어 두 번의 인사와 서너 차례의 문의 사항에 대한 답변. 그것이 나의 일과이다. 그렇게 오후 6시가 되면 나는 10분 거리의 세 번째 집으로 돌아간다. 언젠가 연장을 하다 어느 순간 소유권을..
step 3 즐거운 날? 나의 삶은 무척이나 즐겁다. 다들 나를 보며 넌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지만 난 즐겁다. 이유를 말 할 수 없을 뿐, 난 정말 즐겁게 살고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일, 같은 행동의 반복. 나는 행복하다. 내가 느끼는 행복이 다를 뿐이다. 나는 행복하다. 하지만 안 믿어 줄테지? 그러니까 묻지 마라. 나는 불행한 척 표정을 짓는다. 세상을 다 산척한다. 나는 행복하다. 오늘도 긴 하루가 시작된다. 즐거운 7시 40분. 비명소리에 일어난다. 하이. 즐거운 비명. 새로운 하루. 그리고 같은 일상. 아침 공기가 차다. 겨울이 오고 있다. 내일은 좀 더 일찍 일어나야겠다. 길 가에 피어있던 꽃들도 힘을 잃어 고개를 내린다. 시간은 또 흘러간다.
step 2 6시가 되면 다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죽은 눈들이 풀려 생기가 돈다. 그들이 살아 나가는 시간, 6시. 내 일이 끝나는 시간. 도서관은 언덕에 있다. 가끔은 숨이 찰 정도로 힘들다. 그래도 올라오면 마음이 편하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곳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그래서 난 이곳에 온다. 집으로 돌아가면 작은 불들이 날 맞이한다. 현관, 복도, 그리고 집 안. 들어가서 씻고 눕는다. TV를 켜고 이리저리 리모콘을 돌린다. 사람들은 다 죽은 눈으로 웃고 있다. 나는 그래서 TV를 본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안도한다.
step 1 달이 차고 기운다. 강이 흐르듯이 삶이 흘러간다. 나는 흘러가는 삶을 보며 한숨을 쉰다. 하루가 길다. 그리고 1년은 짧다. 세상이 흘러가는 소리가 너무 빨라 가끔 기절한다. 그리고 일어나보면, 또 한 해가 지나간다. 구질 구질한 날들이 지나간다. 나는 울었다. 가끔 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묵직하게 돌아가는 소리에 나는 숨이 막힌다.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뇌 속을 녹아내리고 있다. 7시 40분. 비명을 지르는 알람에 일어난다. 눈이 무겁다. 나는 살아있다. 치약을 묻혀 든 칫솔을 자세히 살펴본다. 안쪽에 누런 때가 보인다. 살짝 찡그렸다 입에 넣었다. 뭐 죽기야 하겠어? 아직 난 살아있다. 하루는 정말 무겁게 지나간다. 밖으로 나가면 차들이 지나는 소리에 짜증을 내며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8시. ..
죽음의 신은 언제나 유혹한다.(5) 아침이 오고 해가 하늘에 걸려 있다. 시계가 9시를 넘기는 순간 나는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그 뒤로 한 시간을 전화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전화는 없었다. 완벽하게 나는 사라졌다. 이게 내 모습이었다. 맥이 풀린채 소파에 앉아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 잘 굴러가는 세상. 나는 의미가 없다. "어떻습니까? 사실 참 씁쓸한 부분입니다만 당신의 존재가 가지는 중요성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이유들이 당신에게 너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 당신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가족도 없고, 직장도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신이란 존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서류가 존재하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음을 정하겠습니까?" 나..
죽음의 신은 언제나 유혹한다.(4) "어떻습니까? 당신의 삶에 무게감이 없다는 것. 그것이 당신이 죽어야 할 첫 이유입니다. 당신에게 가족이 어떤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세상의 가족의 개념은 당신이 그 사람과 지내는 관계로는 설명이 안되지요. 쉽게 말한다면 그저 동거인이라는 단어로 설명이 되는 군요. 하지만 당신이 죽어야 할 이유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당신에겐 삶에 대한 의욕이 존재하지 않아요. 사실 인간이란 삶에 대한 겅렬한 욕망을 가진 존재인데 당신의 삶에선 그런 욕망이 없어요. 그저 기계의 핀처럼 왕복 운동을 할 뿐이지요." 성실함. 사람들은 나에게 성실하다고 했었다. 꾸준한 실적과 오점없는 출근. 사실 내가 봐도 나를 하나의 부속으로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내 이름을 잊고 그저 메니져님이라 부르기만 하는 ..
죽음의 신은 언제나 유혹한다.(3) 그의 말을 듣는 동안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12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공익요원이 서 있었다. 짜증섞인 표정과 손짓으로 이미 차가 끊겼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개찰구 쪽으로 걸었다. 그가 뒤에서 이야기 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군요. 다시 봅시다." 그는 사라졌다. 개찰구 밖으로 나와 집으로가는 택시를 잡았다. 역 앞에는 길게 택시가 늘어서 있었다. "대방동으로 갑시다." 짧은 대화, 그리고 차분한 라디오의 음악. 나는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곧 다시 볼 그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를 따라가면 될까? 사실 죽음이란게 누구에게나 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냥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이 그를 따라가는 방법. 가장 편하..